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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발달과 맞지 않는 선행교육이 가장 나쁩니다"

  • 날짜
    2013-06-18 10:04:55
  • 조회수
    1043
한국의 대표적 뇌과학자인 서울대 의대 서유헌 교수는 우리 뇌는 3층으로 이뤄져 있어서 각 층의 성장 시기에 맞는 교육이 필요하다 강조합니다. 각각의 뇌기능은 또 연결돼 있으므로 1, 2층 기초가 튼튼해야 한답니다. 뇌 박사의 충고에 맞는 교육방법은 무엇일까요.

‘귀댁의 자녀가 입학 전에 글자를 깨치면 교육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독일의 취학통지서 밑에 적혀 있는 경고문구다. 그리고 만일 어떤 학부모가 이 경고를 어기면 학교의 담임선생으로부터 “왜 그렇게 부도덕한 일을 하셨습니까? 그 아이가 수업시간에 산만하고, 집중 안 하고, 인격형성에 장애가 생기면 당신이 책임질 겁니까?”라는 식의 ‘취조’를 당한다고 한다. 글자 좀 가르친 것으로 부도덕에다 인격장애까지 운운하다니, 우리 현실에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장면이다.
그러나 ‘뇌’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게 되면, 교육선진국들이 선행교육에 대해 왜 그토록 분개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서울대 의과대학 한국뇌연구원의 서유헌 교수에게 우리가 (분명 언제인가 배웠는데도 늘 그래 왔듯 입시가 끝났기 때문에) 잊고 사는 ‘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인간의 뇌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발달하는데 시기별로 발달영역의 기능이 전부 다르므로 각각의 시기에 걸맞은 교육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뇌과학자 서유헌 교수는 말한다.
“우리의 뇌는 크게 3층 구조로 되어 있는데, 1층은 생명유지의 뇌, 2층은 감정과 본능의 뇌, 그리고 마지막 3층은 공부와 이성의 뇌입니다. 뇌는 20년 동안 서서히 발달하는데, 시기별로 뇌의 발달부분과 각 부분이 기능하는 영역이 다 달라요. 그래서 아직 인지기능이 발달 안 된 유아에게 모국어가 아닌 인위적인 언어교육을 하면 원래 이 시기에 발달해야 할 감정과 본능의 뇌가 잘 발달하지 못합니다. 언어를 관장하는 측두엽은 7~8살은 되어야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때문에 언어교육은 초등학교에 가서 시키는 게 맞는 겁니다.”
또한 각각의 뇌기능들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연결되어 기능하기 때문에 1, 2층의 기초공사가 제대로 되어야 3층의 고차원적 기능도 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은 이성의 동물이기 이전에 감정과 본능의 동물이며, 따라서 감정과 본능의 뇌가 제대로 발달해야만 고차원적인 이성의 뇌가 잘 발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뇌는 20년 동안 서서히 발달한다
언어 뇌는 7살 돼서야 본격 자라고
감정조절 뇌는 유아기 중요한데
그 시기에 언어 공부 시키니 망한다
남과 비교하는 마음 버리고
아이 뇌 발달의 조력자가 되라



남보다 일찍 하면 망한다!
공부와 이성을 담당하는 3층 뇌에서 서 교수가 가장 강조하는 부위는 감정조절 기능을 하는 전두엽이다. 감정조절 외에도 인간사고의 가장 고차원적 기능들, 즉 창의적 계획 수립, 선택적 주의 집중, 호기심, 동기부여 같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전두엽이 극도로 발달하는 시기가 바로 유아기라고 한다. 그래서 이 시기엔 그 무엇보다 우선해서 도덕성과 인성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많은 아이들이 고통받고 있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도 대부분 이 전두엽이 발달하지 못해 생기는 것이라고 한다.
“‘세살 버릇 여든 간다’는 옛말이 딱 맞아요. 만 세살이면 전두엽이 가장 빠르게 발달하기 때문에 이때 도덕성 교육을 하지 않고 더 자란 뒤에 하려면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리고 아주 힘들게 됩니다. 지금 유치원에서 인성교육은 안 하고 인지교육만 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전두엽 발달이 제대로 안 되고 있어요. 전두엽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감정조절’이 약한 아이들은 학교폭력이나 게임중독 같은 것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것 중에서 뇌 발달과 맞지 않는 선행교육이 가장 나쁩니다. 이제는 부모들이 남보다 일찍 하면 우리 아이 뇌가 망한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남보다 많이 하면 망한다!
인간의 뇌는 천억개가 넘는 신경세포가 수천조의 회로로 연결되어 정보를 전하고 있으며, 이들은 붙어 있지 않고 각각 미세한 간격으로 떨어져 있다. 그래서 뇌세포들이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려면 이 틈을 오가는 ‘신경전달물질’이 필요하다고 한다. 신경전달물질은 뇌가 쉬며 잠을 자고 일어난 오전에 많고 저녁이 되면 점차 고갈되어 정보전달력이 떨어지게 되는데, 이런 상태에서 계속 뇌에 뭔가를 집어넣으면 과부하가 걸려 뇌 기능에 이상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중고등 학생들도 8시간은 자야 해요. 근데 애들이 밤늦게까지 학원 다니느라고 잠을 안 재우니깐 어떻게 하겠어요? 뇌는 신경전달물질을 만들어야 하니깐, 학교 가서 아침에 자고 오후엔 졸고 그리고 저녁에 정신 차리면 학원에 갑니다. 그렇게 학교에서 하루종일 자고 나서 가니깐 학원에서는 공부 잘 시키는 것처럼 보이는 거죠.”
잠은 신경전달물질을 만드는 것 외에 낮에 입력된 정보에 대한 기억을 재정비하는 기능도 한다. 스트레스 때문에 잠을 잘 못 자는 사람들이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뇌가 정상적으로 기능을 하려면 성인은 8시간, 초등학생은 10시간, 영아들은 20시간 정도는 꼭 잠을 자야 한다고 서 교수는 말한다.

남과 비교하면 망한다!
서 교수는 70억 인구는 모두 얼굴이 다르듯이 뇌도 모두 다르기 때문에 아이를 절대 다른 아이, 또는 형제자매와 비교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뇌가 다른데, 어떻게 비교를 할 수가 있겠어요? 그 애만이 잘하는 것이 있는데 그걸 안 하니깐 못하는 거지. 김연아가 될 아이에게 의사가 되라고 해봐요. 그게 되겠어요? 부모들이 아이의 뇌를 잘 관찰해야 해요. 아이들을 부모 욕심에 맞추려고 하지 말고, 진짜 뭘 좋아하는지 알고 그것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력자가 돼야 하는 겁니다.”
‘뇌박사도 아닌 부모들이 어떻게 아이의 뇌를 잘 볼 수 있지요?’라는 필자의 ‘우문’에 서 교수는 ‘다른 아이와 비교하는 마음을 버리고 아이를 사랑만으로 잘 바라보라’고 ‘현답’한다.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면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보이지 않을 리 없다는 것이다. 또 3층 뇌의 회로는 1, 2층의 뇌 회로가 활짝 열려야 활발하게 기능하기 때문에, 감정과 본능을 충족시키며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재밌게 할 때 비로소 이성적인 공부도 잘하게 된다는 게 서 교수의 지론이다.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은 대부분의 아이가 고등학교 가서 공부 잘하기 위해 ‘수학정석’을 열심히 푸는 시기다. 그러나 ‘뇌’박사는 아들이 중3 겨울방학이었을 때 함께 유레일을 타고 유럽 곳곳을 여행했다고 한다. 밤새워 달리는 기차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누워 시를 읽고 마음을 나눈 것이다. 서 교수는 어린 시절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하늘의 큰 우주부터 우리 머릿속의 작은 우주까지를 생각했다. 그 신비감이 항상 마음속에 남아 있었기에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에게 공부란, 어린 시절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느꼈던 신비스러움의 실체를 알고자 했던 바람의 실현이었을 것이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지난해 우리나라 청소년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다. 또 청소년 9명 가운데 1명은 자살을 생각해봤고, 그 가장 큰 원인은 ‘성적 및 진학문제’(39.2%)다. 그리고 우리 청소년의 주관적 행복지수는 5년 연속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꼴찌다.
아이들은 지금 공부하는 것이 재미없다. 왜? 일생에서 가장 예민한 시기인 아이들의 ‘감정과 본능’을 전혀 만족시켜 주지 못하는 경쟁 위주의 입시교육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재미없는 일을 날마다 해야 하는 아이들이 행복할 수는 없다.
알 수 없는 ‘미래’에 행복을 저당 잡히고 싶지 않은 아이들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감정과 본능’을 만족시킨다.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가상세계에 빠져들기도 하고 극단적으로 죽음을 선택하는 아이들도 있다. 무모한 입시경쟁에 장단 맞추는 사이에 부모들은 사랑하는 아이들을 죽음의 문턱으로 내몰고 있는 셈이다.
아이들이 단순히 ‘좋은 대학’이 아니라 이루고 싶은 ‘꿈’을 가지면 공부하는 것이 지금보다는 좀더 재미있지 않을까. 늦은 밤 지친 몸을 이끌고 학원순례를 하는 대신 밤하늘의 별을 보며 꿈을 키울 수 있다면, 학원 갈 시간에 마음껏 놀고 충분히 잔 뒤에 지금보다 더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등교해 선생님을 바라볼 수 있다면 아이들은 좀더 행복하지 않을까. 학교가 아이들의 그런 꿈 많은 눈길을 좀더 자주 마주할 수 있다면, 우리의 취학통지서에서도 곧 선행학습의 폐해를 경고하는 문구를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뇌를 알았으니 ‘뇌’박사님의 충고대로, 아는 것을 실천하는 현명한 학부모가 되어 늦은 밤까지 공부하려는 내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자. “얘야, 이제 자야 할 시간이다. 이 시간쯤이면 너의 뇌엔 신경전달물질이 바닥나서 공부를 해도 별로 도움이 안 된단다. 소중한 내 새끼~ 뇌 버릴라. 어서 자거라.”
김정주/작가 whereis@naver.com

출처 : 한겨레신문 2013.6.10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59123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