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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이 비밀의 문인 이유

  • 날짜
    2015-07-11 18:59:49
  • 조회수
    903

강연자 맥 바넷은 1982년생 동화작가다.
대놓고 어린이들에게 거짓을 말하는 것(!)을 통해 삶의 진실을 알려주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다. ‘애너벨과 신기한 털실’을 통해 2013년 칼데콧 명예상을 수상하였다.

기발하고도 생기발랄한 생각으로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글을 쓰는 맥 바넷은 이번 테드 강연(TED talks, 2014. 6.)을 통해 어른들의 마음도 사로잡은 듯하다. 그 증거로 들 수 있는 건 두 가지. 첫째, 16분가량 진행된 강의 내내 Sonoma County에 있었던 청중들과 내가 동시에 같은 지점에서 지속적으로 낄낄거리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두 번째, 82년생 34살 젊은 나이의 남자가 저보다 긴 머리의 금발을 찰랑거리며 강연 무대 위에 있는 모습에 ‘이건 뭔가... 쩝’ 했던 내 마음이 16분 후, ‘이건 뭔가.... 완전 호감형!’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금색의 단발머리를 가졌으나 세심한 빗질엔 서투른 이 남자를, 이런(!), 좋아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나니아 연대기에는 주인공 여자아이가 옷장 문을 열고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내 기억에 서른 중반 쯤 이 영화를 보았던 듯 한데, 그 나이에도 그 장면이 인상적이었던지, 장 문을 열고 두리번거렸던 기억이 있다. 딱 한 번! 그때 내 마음 상태는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본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잠시 구분하지 못하는 철없는 어른? 그렇지 않다면, 좋은 책이 주는 비밀의 문이 잠깐 제 마음에도 열렸던 것일까?

좋은 책이 갖고 있는 비밀의 문, 그 문이 있다는 것은 진실이다(배울 만큼 배운 우리는, 읽을 만큼 읽고 사는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데 문이라는 것은 밀수도 있고, 당길 수도 있으며, 닫아둘 수도 있고, 항상 열어둘 수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문이란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열고 나가든지, 닫고 들어가든지, 뭐 그러라고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좋은 책이 갖고 있는 그 비밀의 문으로 지금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좋은 책은, 독자를 따뜻한 허구의 세계로 인도한다. 이건 문을 열고 나가는 행위다. 문을 열고 새로운 세상, 그 밖으로 발을 내 디디는 경험. 그건, 여행을 떠나는 이의 마음과 비슷하다. 여행에는 문을 열고 새로운 세상을 만나러 가는 설렘과 두려움이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여행을 떠나 있는 그 순간보다 여행에서 돌아와 일상을 살아내는 그 순간 여행의 가치는 빛을 발한다. 여행했던 순간순간의 빛나는 기억들과 깨달음들이 일상의 반복을 이겨내게 하고, 지난한 일상에 위로를 던지며 심지어는 일상의 반복을 감사하게 까지 만들어 준다.

책도 그렇다. 책을 통해 허구의 세계로 떠났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때 우리는 빈손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비밀의 문을 열고 나가 허구의 세계에서 무언가를 얻어 그것을 양손에 들고 비밀의 문을 열어 돌아온다. 그리고 양손에 든 그것으로 더 아름다운 일상을 일구어 가지고 말이다. 책이 주는 비밀의 문을 열고 밖으로 발을 내디뎠다면, 반드시 비밀을 문을 열고 돌아와야 한다. 그래서 맥 바넷은 허구의 세계를 현실로 끌어들이고 픽션이 주는 즐거움을 현실에 구현하며, 이것이 일상을 아름답게 하는 원천임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참, 책이 주는 비밀의 문은 염력(念力)으로만 열고 닫을 수 있기 때문에 염력을 연마하는 건 필수다. 염력이 약한 사람들은 문을 열고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으니, 주의 하시길!


[Crezone] 글: 남미정. 2015. 6.30일자